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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지 10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하여 304명의 생명이 가족의 곁을 떠났으며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채 실종자로 남아있는 9명은 세월호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늑장대응 및 알 수 없는 이유로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였고, 국민의 생명과 주권을 지켜야 할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엄청난 사람들이 수장을 당하였으며 한명이라도 더 구조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이후 정부와 여당은 헤괴한 논리로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진상 규명을 원하는 국민들과 대결하기에만 바빴습니다.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말 할수 없다고 하는데,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이 알고 싶은게 아니라 세월호 사고 7시간 동안 왜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 것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올렸던 글을 링크해보았습니다.

 

2016/11/18 - 그것이 알고싶다 대통령의 7시간의 비밀 .. 시크릿 쉿 ~

2016/04/22 - 영화 '다이빙 벨' 유투브 100만 관객 돌파 - SNS의 힘!

2016/02/18 -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 ] 이상호 기자의 트레일러를 보고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의 추악하고 더러운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곧 밝혀 질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감추고자 하였던게 무엇인지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엄한 처벌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1boon의 세월호 침몰 이후

1000일 동안의 기록입니다.

 

 

잊을 수 없는 날, 기억해야만 하는 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꼭 천일 되는 날입니다.

그 길고 긴 나날 동안 바뀐 것은 많지 않고

유가족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천일을 앞두고 지난 날들을 돌아봅니다.

유가족들은 어떻게 싸워왔을까요.

어떤 구호를 외쳤을까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2014724, 참사 100.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100일이 되어가는데도

여야는 특별법을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뜨거운 여름,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100일을 앞두고, 어떤 유가족들은 걸었습니다.

십자가를 메고,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100일을 앞두고, 어떤 유가족들은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기한 없이.

100일을 앞두고, 생존학생들도 걸었습니다.

안산 단원고에서 국회의사당까지.

 

 

2014111, 참사 200.

성역 없는 진상규명.”

 

10월31일, 여야는 마침내

특별법에 최종으로 합의했습니다.

수사권도 기소권도 보장되지 않는,

불충분한 법안이었습니다.


200일을 며칠 앞둔 10월29일에는

황지현양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이 날은 지현양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11월1일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될까?

 

 

201529, 참사 300.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300일을 앞두고 유가족들은 다시 걸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450km를 걸었습니다.

300일인 2월9일 열린 문화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외쳤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2015416, 참사 1주기.

시행령을 폐기하라.”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언론플레이’는 거침없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느닷없이

유가족들에 대한 배·보상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보수언론들은 배·보상액이 얼마니 하며

유가족 흠집내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단 하나만 바랐습니다.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즈음 정부는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조사위원을 줄이고 해수부 공무원에게 중책을 맡기는,

특조위 힘빼기 시행령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시행령을 폐기하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습니다.

5만명이 집회에 참석해 광화문으로 행진했는데,

경찰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맞이했습니다.

무정한 바다 엄마들은 목숨을 다해 울었다 

 

무정한 바다 엄마들은 목숨을 다해 울었다

 

 

2016416, 참사 2주기.

특별법을 개정하라.”

 

참사 2주기를 앞둔 3월 말,

세월호 특조위는 제2차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의 ‘태업’이 이어졌지만

청문회에서는 새로운 사실들이 여럿 밝혀졌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방송이 청해진해운 지시였다는 증언,

해수부가 인양 뒤 조사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사실,

청해진해운과 국정원 사이의 밀접한 관계.

 

“청해진해운이 ‘가만히 있으라’ 지시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는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특조위를 조기종결시키려고 했습니다. (기사링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주기 집회에서

시민들은 “특별법 개정”을 외치고

“온전한 선체인양”을 외쳤습니다. 

 

 

2016101, 참사 900.

여전히 특별법을 개정하라.”

 

9월30일, 특조위는 결국 활동을 멈췄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특별법 개정안을 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버티기에 나선 결과

끝내 개정되지 못했습니다.


유가족은 참사 900일인 10월1일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앞서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광화문 광장으로 발길을 옮겨

"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날은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허다윤양의 스무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해산 위기 특조위, 보이지 않는 길

 

 

그리고 이제 참사 1000일이 다가왔습니다.

1000일 중 단 하루도 쉬운 날은 없었습니다.


세월호는 계속 바다에 잠겨있고,

미수습자 9명도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동거차도에는 인양작업을 지켜보는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는 농성하는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참사 1000일.

아무것도 잊지 맙시다. 

세월호를 기억합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올 해에는 세월호가 인양되어 실종자로 남아있는 9명의 가족분들에게 돌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 은폐에 동조한 무리들이 반드시 처벌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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