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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에 합격한 노숙 소녀 카디자 윌리엄스(Khadijah Williams)의 열정

 

 

노숙자보호소를 전전하면서도 강한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버드대 장학생으로 입학한

흑인 소녀 카디자 윌리암스의 감동어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LA타임즈에 소개된게 2009년이니까 벌써 6년전 이야기입니다. 이미 국내에도 알려 졌었는데

저는 모르고 있었으니까 이 당시 제가 아마도 다른 일로 바빴거나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것입니다.

최근 올해 들어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 생각과 동기 부여가 될만한 여러가지를 찾다가 알게 된 내용이라 제 마음도 다시한번 다잡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 봅니다.

 

 

 

카디자 윌리암스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어머니와 함께 미국 서부 여러지경 노숙자 쉼터와 값싼 모텔 등을 찾아다녔으며 이러한 이동 생활로 인하여 12학년을 마치는 동안 12곳의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노숙자 쉼터를 찾아 생활을 해야 할 만큼 어려웠기 때문에 매춘부와 마약상들이 들끓는 거리의 쓰레기통 더미에서 지내며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였지만, 절대로 학업을 접지 않았고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하여 아침마다 머리를 다듬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교를 옮길 때 마다 영재프로그램에 늘 참여 할 정도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새벽 4시에 일어나 통학하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등 성실한 모습과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였으며, 토론동아리 참여 등으로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여하여 하버드대를 비롯하여 브라운대,컬럼비아대 등 미국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고 최종으로 하버드대를 선택하였습니다.

 

카디자는 그의 어머니가 14세때 자신을 낳아 길에서 자신을 기른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며, 어머니가 항상 공부 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래 내용은 카디자 윌리암스의 하버드대 졸업 연설 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14살 때 차가운 쓰레기더미 속에서 저를 출산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전 ... 뉴욕의 거리를 전전했고
무료급식과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소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키워졌습니다.

 

값싼 모텔과 노숙자 쉼터를 찾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고
대부분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집 주소는 언제나 뉴욕 어느 동네의 식당 뒷골목 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은 '노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 공부가 좋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그나마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한권의 책을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어머니와 저는 두 모녀가 감수해야 할
위험한 시선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12학년을 다니는 동안 자그마치 12 곳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5권의 책을 읽었고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의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나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꿈.
우리 가족이 더 이상 남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꿈.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언제나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께 이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학교는 옮기지 않겠다고 부탁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돌아갔습니다.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고  토론 동아리 참여, 육상팀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모든 곳이 저에겐 배움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복지단체들이 장학금으로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사회단체에서 절 지켜봐 주었습니다.
절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인생과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전 결국  브라운과 컬럼비아, 암허스트 등
미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아냈습니다.

"그녀를 합격시키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를 하는 겁니다."

 

카디자 윌리엄스!
노숙자였던 저는 지금 하버드의 4년 장학생입니다.

"전 제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어요.
남들이 '노숙자니까 그래도 돼.'라고 말하는 걸 너무나도 싫어해요.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2013년 하버드대를 졸업하였으며 첫직장은 그녀의희망에 따라 교육기술기관의 Project Manager로 사회의 첫발을 디뎠고, 더이상의 노숙자가 아닌 뉴욕의 살기 좋은 아파트도 구하였습니다.

그녀의 졸업식에는 오프라 윈프리가 초청 연사로 연설하였으며 카디자 윌리암스의 삶에 대하여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상황에 따라 합리화시키거나 타협하는 일들은 STOP을 부릅니다.

멈추지 말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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